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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쥐도새도 모르게 소화되는 밥상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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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중호 |
날짜 : 18.07.03 |
조회 : 1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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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장마와 호우를 예보하는 반가운 소식에 혹시나 행사가 취소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며, 아내에게 재단 사무실에 문의해 보라고 했다.
다른것들 생각할 겨를 주지않는 회사일 때문에 떼우는 끼니로 먹거리를 대하는 무지랭이 무관심한 남편인 나는,
'나를 바꾸는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 덜컥 후보2번에 당첨되었다가 취소한 팀들 덕분에 기회가왔다고 기뻐 날뛰는 아내를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장마에 폭우라니...
토요일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으나, 시간계산 잘 못하여 늦잠 까지 자버렸으니, 꾸역꾸역 가는 마음은 불주사 맞으러 가는 마음 같았다.
먼길달려 도착한 동산은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마치 유적지 같은 깊은 내공 숨기고 있는 요새같은 느낌이랄까...
숙소 배정을 받고 정겹게 '쉬리'라고 적힌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종가집 사랑방같은 정갈함과 자연광 화장실의 화사함에 눈이 부셨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정성스레 프로그램을 만들어 초대해 주신 재단 소개며 프로그램 설명을 듣고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은 쭈뼛함으로 저마다의 소개를 하는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늦잠 덕에 아침부터 주린 배를 안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는 평소 먹던것과는 사뭇 다른 음식들이 가득있었으나, 입 짧은 8살 막내딸은 큰접시에 달랑 김 스무장을 펼쳐 담으며 뭐라고 조잘댔고, 나는 서울에서 먼길달려 아침까지 굶으며 온 '밥상'이라는 주제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속으로 기대에는 살짝 못 미친다고 중얼거렸다.
식사 후 이어진 백승우 농민의 평소 무관심했던 먹거리와 농사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비슷한 참기름, 된장, 소주 같은 것들이 우리의 밥상을 빼앗아버리고, 진짜 참기름, 된장, 소주는 "옛날"이라는 이름이 붙어 주류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현실이 농민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하소연 하고 싶었을까,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었다.
태생은 농촌이나, 농촌을 잊어먹고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공감할 담백하고 유익한 강의였다.
황호섭 국장님의 잡학다식함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가져다준 선물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DMZ전시관 투어도 이어졌다.
연이어 모종삽과 호미 쥐어주고 뒤로 돌아 오르는 동산에 펼쳐진 넓은 농장에서, 마음씨 좋은 도둑놈 같은 협동부장님의 지도에 어른아이 할것 없이 딱 즐거울 정도로만 다유(多油)들깨 심기를 하였고, 재미 있는 농사 설명과 깨알같은 식물 이야기를 들으며 생명동산 투어를 하였다.
저마다 건강미를 뿜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밀, 감자, 토마토, 옥수수 등등을 둘러보며 저런것들 먹으며 살면 나도 따라 건강해지겠구나 싶었고, 손 바닥이 새까맣도록 따먹어도 누구하나 뭐라 않는 오디, 앵두는 덤이었다.
기대에 못 미친다던 점심은 쥐도새도 모르게 소화게 됐는지 속 편하게 다음 끼니를 요란하도록 불러 재꼈고,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느때 보다 가벼웠다. 평소보다 가득담은 접시가 부끄러울새도 없이 저녁 한끼 기분 좋게 비웠고, 건강한 밥상에 대해 더욱 궁금해 지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고 좀 전 부추밭에서 본 밑동 잘린 흔적들 확인한 건강한 부추가 가족 이름 적힌 테이블위에 가득 쌓여 있었고, 지역에서 이름난 요리선생님의 조근한 설명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짱아찌를 만들어 아이들 몫까지 꼼꼼하게 한통씩 가져올 수 있었고 이어지는 오행순환의 방에서 오랜만에 찜질로 몸과 마음이 노곤노곤해질 수 있었다.
야식으로 내어주시는 감자와 두부가 어찌나 달큰하고 건강한 맛인지, 일부러 주방 이모에게 감자를 도대체 어떻게 한거냐고 따지듯 묻게 만들기도 했다.
맑은 날이었으면 총총히 별들이 있었겠지만, 별 대신 밤하늘 가득히 흩어지는 개구리 소리와 함께 가족과 한방에 누워 늦도록 이어지는 오붓한 대화와 함께하는 밤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부터 그날따라 틀리지 않는 예보대로 비가 내렸고, 펄쩍펄쩍 뛰는 무당개구리를 피해가며 이제는 기대되는 속편한 아침을 먹으러 향했다. 여느 호텔 조식에서도 절대 그런적 없었는데, 1등으로 도착하여 구수한 밥냄새 풍기는 밥상을 기대하며 기다리기는 처음이었다.
비가와서 아내가 기대하던 자작나무 숲은 가보지 못했지만, 원래 있던 프로그램 이었던것만 같던 고구려 소리와 북체험은 스트레스로 찌들었던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두부만들기와 감자전 체험을 하며 이것저것 넣는것 없이 정성만 있으면 충분히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감자와 두부덕에 점심을 못 먹을 것 같더니, 눈개승마라는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식재료의 묘한 매력 덕분에 뚝딱 마지막 밥상을 배부르게 물리고 나서, 짬짬이 찾았던 도서관에서 읽다만 책의 한 구절을 마저 읽었다.
그렇게 서먹해 하더니 어느새 친해진 어린것들은 누구라도 할 것없이 헤어지기 싫어할 정도로 정이 들어 되어버렸고, 마지막까지 정성스레 키워낸 아주까리 콩과 잡곡까지 쥐어 보내주시는 동산 분들의 정에 진심어린 감사와 함께 짧지만 길었던 1박2일의 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모처럼만에 융숭한 대접 받은 기분으로 내내 행복하였고, 특히 살뜰히 챙겨주시며 잡학박사같은 지식도 뿜어내주셨던 국장님의 배려 덕분에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눈치빠른 11살 아들놈은 식사시간에 밥먹으랴 메뉴판에 붙어 있는 밥상 식재료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확인하랴 바쁘더니, 지금도 호기심처럼 원산지를 뒤적이는 것을 보고 아이들 교육에서도 더없이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먹거리가 소중한 만큼, 먹거리를 건강하게 길러내는 농촌과 농민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간다는 서글픈 현실을 새삼스럽게 느낄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참가해본적 있다는 다른 팀들이 마르고 닳도록 알차다고 추천하던) 농촌체험에도 꼭 한번 참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어쩔수 없으셨겠으나 후보 2번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게 우리 앞에서 참가 포기를 해주신 팀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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