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경쟁, 자연 친화, 자연 먹거리를 누린 잣향기 푸른마을 |
|
| 글쓴이 : 김광민 |
날짜 : 20.08.30 |
조회 : 1183 |
|
|
# 불행하기만 하던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생활에 설렘이 생기다.
형, 누나들을 보며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6학년이 되면 1학기에는 2박 3일로 수학여행을 가고,
2학기엔 졸업여행도 간다. 또, 학교에서는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 추억 만들기를 한다며 재미있는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생활은 불행하기만 하다. 모든 학교일정이 바뀌고 각종 여행과 행사는 취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내내 쓰고 있는 탓에 친구들의 얼굴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대 급으로 길다는 장마로 여름방학 내내 비만 주룩주룩 내렸다.
나의 초등학교 6학년을 이렇게 망치는 것이 억울하고 불운해서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엄마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대산 농촌 체험을 신청했었는데, 그게 운 좋게 당첨됐네? 상황이 안 좋기는 한데...”
이 말을 듣고, 나는 옛 기억이 나면서 마구 설레었다. 몇 해 전에 대산 농천 체험을 다녀왔는데,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행을 또 간다면 그동안의 슬픔도 잊혀 질 것 같았다.
“물 맑고, 공기 좋고, 청정 먹거리가 있는 곳이니 서울 보다 낫지 않겠어?”
아빠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가자고 하셨다.
가는 걸로 결정이 난 후로 난 며칠 동안 설레는 기분에 들떠있었다.
# 유난히도 푸르른 잣나무, 짙은 잣 향기 속으로 들어가다.
이번에 다녀온 마을은 “잣 향기 푸른 마을!”
경기도 가평이라 서울과 가까워서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차도 고속버스도 아닌 지하철을 타고 간다니 여행기분이 안 날 줄 알았는데,
경춘선으로 갈아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바뀌니 여행 간다는 실감이 났다.
오히려 시간도 적게 들고, 이동이 간편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평은 서울과 가까운데도 공기가 서울과는 달랐다. 비가 내내 와서 눅눅한 공기가 답답했는데, 맑은 공기를 마시니 상쾌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분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시면서 방을 알려 주셨다. 배정받은 숙소는 2층(복층) 건물이었다.
2층은 침대와 선풍기가 있어서 시원하게 잘 수 있었고 1층에는 화장실과 주방, 거실이 있는데, 에어컨이 있어서 무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또 화장실 주방 등이 청결해서 사용하기 좋았다.
짐을 풀고 참여한 모든 가족이 모여 마을 소개를 듣고 가족 소개도 했다. 또, 2박 3일 동안 함께 하며 지켜야 할 규칙을 배웠다.
답답한 마스크를 끼고, 체온을 재서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 번거로웠지만 즐거운 여행이 되기 위해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하니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있듯 재미있는 체험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도 밥을 먼저 먹고 힘을 내야 한다.
점심식사로 11첩 시골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장에서 났다는 각종 농작물로 반찬을 해 주셨는데 정말 푸짐했다.
그 반찬들을 넣고 계란후라이를 얹고 참기를을 두룬 후 비벼먹었는데 정말 맛이 있었다.
아빠께서는 2그릇이나 드셨는데, 자연 밥상이어서 그런지 부대끼는 게 없어서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이제까지 다녀봤던 곳 중 이곳의 밥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드디어 체험이 시작됐다. 첫 체험은 게이트볼이었다. 동네 공원에서 할아버지들이 하시는 걸 먼발치에서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게임의 이름이 ‘게이트볼’ 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T자형 스틱으로 공을 쳐서 3개의 문을 통과 시키는 경기인데, 국제 심판님과 마을 주민들께서 차근차근 잘 가르쳐 주셔서
처음 해 보는데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시작 선에서 공을 쳐 첫 번째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여러 번 실패를 해서
포기를 할 뻔 했는데, 응원도 해 주시고 기회도 여러 번 주시고, 바로 옆에 오셔서 개인적으로 다시 알려 주셔서
드디어 첫 번째 게이트를 통과했다. 이후에는 게임이 잘 풀렸다.
보기에는 공만 맞추면 되는 것 같았는데 하다 보니 팀원 간의 협동과 전략이 필요한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팀이 점수가 날 수 있도록 내 공으로 다른 사람의 공을 밀어주기도 하고, 우리 팀의 공을 지키기 위해 내 공을 진로 방해용으로
내 놓기도 했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하면 몸도 운동시키고 두뇌도 운동시키고, 협동심도 키우는 1석 3조의 운동이 될 것 같다.
게이트볼이 끝난 뒤 간식으로 먹을 옥수수를 까고 깻잎과 아로니아를 땄다. 아로니아가 눈에 좋다고 말씀해 주셔서 한 소쿠리 땄다.
너무 많이 딴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는데, 집에 와서 말려보니 양이 확 줄어 ‘더 따올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컴퓨터 화면을 보는 시간도 늘고 핸드폰도 자주 해서 눈이 걱정됐는데 아로니아를 먹고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 노안이 시작됐는지, 글씨들이 흐릿하게 보인다며 걱정하는 엄마께서 많이 드시고 젊음을 되찾으시면 좋겠다.
드디어 가장 기대하던 물놀이 시간이다. 코로나19로 워터파크는커녕 대중목욕탕마저 못 가는 상황이다 보니 물이 그리웠다.
지하 140M에서 끌어올린 지하수여서 정말 차가웠다. 또래 친구가 없고 동생들이다보니 장난을 치면서 놀지는 못했지만
물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
농사 체험으로 잡혀 있던 일정이 비가 많이 내린 탓으로 토마토 고추장 만들기로 바뀌었다.
나는 토마토를 싫어해서 ‘왜 하필이면 토마토를 넣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보는 건 처음이여서
기대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가 젊으셨을 때는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전통 장들을 모두를 담가 드셨는데 번거롭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사서 먹게 됐다고
하셨다. 김장하는 것처럼 집안의 큰일이고 복잡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직접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재료도 많지 않고 만드는 법도 쉬웠다.
아빠께서 어렸을 적 고추장을 담그던 추억을 말씀해 주시면서 기억을 더듬어 고추장 담그는 방법에 대해 덧붙여 설명을 해주셨는데,
아빠가 그런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아빠의 추억을 공유하니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토마토를 싫어하지만 직접 만든 것이니 살짝 맛을 봤는데, 토마토 맛은 하나도 나지 않고 사서 먹는 것보다 텁텁한 느낌이 덜 들고
달큰한 맛이 났다. 조리하는 방법도 적어주셔서 집에서도 만들어 보려고 챙겨왔다.
말복 맞이 삼계탕을 저녁밥으로 먹은 뒤 천연 비누 만들기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비누 베이스를 잘라 녹여서 비누 만들기를 해 본적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만들어진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갖가지 천연 재료만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재료들의 용량을 전자저울로 직접 측정하고 온도를 측정하며 가열하는 과정들이 있어서 더 직접 만드는 느낌이 들고 재미있었다. 1달이 지난 후에 사용할 수 있어서 아직도 건조 중인데, 이 비누 덕분에 집안에서 향긋한 아로마 향이 난다.
# 비경쟁, 자연 친화, 자연 먹거리를 누리다.
둘째 날 첫 체험활동은 춤 테라피였다. 원래는 축령산 잣나무 숲 힐링 트래킹을 해야 하는데, 산이 통제돼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직접 오셔서 춤 테라피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오랜 만에 산길을 걷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춤추며 신나게 놀아서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새총으로 은행 알을 쏘기도 했다. 은행 알에 날려버리고 싶은 것을 적어서 새총에 실어 날려 보낸 것이다. 평소 무기에 관심이 많아
집에 많은 종류의 총이 있어서 과녁 맞추기 놀이를 자주 하는데, 새총을 쏴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뭇가지 모양을 그대로 살려 새총을
만든 것이라 모양이 제각각이라 정확한 조준이 어려웠다. 새총 쏘기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과녁을 맞히는 것도 잘한 것, 과녁을 피해 멀리 쏘는 것도 잘한 것, 과녁 주변에 떨어뜨리는 것도 잘한 것 이라고 한 점이었다. 경쟁 사회에서 정답을 찾고, 좁은 과녁을 통과하는 것만이 미래를 보장받는 일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모든 것이 정답이어서 마음이 편했다.
춤 테라피를 마무리 하면서 가족 인터뷰를 했는데, 서로에 대해 모르던 걸 알아가는 시간이여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부모님께 까칠하게 반응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한바탕 춤을 춘 뒤 살짝 출출한 시간에 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반죽부터 재료손질도 직접했다. 집에서 수제비는 자주 해 먹는데
칼국수는 처음 해 보았다. 준비해 주신 육수에 내가 직접 밀어서 만든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으니 평소에 사 먹기만 하던 칼국수보다
더 맛이고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주변 선생님들께서 “반죽도 잘한다. 칼질도 잘 한다.” 해주신 칭찬이 한 스푼 들어가서 더 맛있었나?
물놀이 등 가족 단위로 자유시간을 가진 뒤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손쉽게 사 먹는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것이 궁금했다. 공 같이 생긴 도구에 우유와 딸기, 초코를 넣고 반대편에
얼음과 소금을 넣어서 데굴데굴 굴리며 얼리는 것이었다. 15분 이상 공을 굴려야 완성이 되어서 정말 힘들었다. 소금을 만난 얼음이
녹으면서 온도를 뺏기는데 그 뺏기는 온도로 우유가 얼게 된다고 한다. 쉽게 사먹는 간식을 이렇게 공 들여 만들어 먹는 게 노동력
낭비라는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먹을 걸 얻는 과정의 노력을 통해 먹거리의 소중함을 알고, 사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을 내기 위해
설탕이 얼마나 들어가는 지도 생각해 보라고 하셔서 이 체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에 딱 어울리는 샌드위치까지 준비해 주셔서 한 끼 식사 같은 간식을 먹었다.
그리고 바로 두부 만들기를 했다. 비지를 제거한 콩물을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간수를 넣고 몽실몽실해 질 때까지 천천히 저어 주었다. 물 같던 콩물이 간수를 넣자 덩어리가 지면서 순두부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다 끓으면 나무로 된 두부 틀 안에 면보를 깔고 그 안에
붓고 뚜껑을 닫고 살살 눌러 물을 빼줘야 하는데 힘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물이 적게 빠지면 쉽게 부스러지고 많이 빠지면 뻑뻑해서
딱딱해 지기 때문이다. 막 만들어낸 두부는 정말 고소했다. 집에 와서 된장찌개에 넣어 먹었는데, 부들부들하고 고소한 맛이 더욱 일품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목공 DIY 체험이 이어졌다.‘별자리 등’만들기를 했다. 별자리가 새겨진 목재를 사포로 부드럽게 만들고 못질을 해서
고정을 시키는 것이었다. 예전에 아빠와 책꽂이 만들기를 할 때 못질을 해봐서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사용한 못은 머리가 작아서
조금 더 어려웠다. 모두 동시에 못질을 하니 시끄럽고 정신없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하다 보니 망치 소리도 잘 안 들리고
내 작품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빠 손을 최대한 빌리지 않고 직접 하려고 하니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그 부분마저 마음에 들었다. 불빛도 은은하게 나와서 무드 등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
# 아쉬움이 천만 배 남는 마지막 ‘가족사랑 농촌체험’
마지막 셋째 날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눈이 일찍 떠져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짙은 푸른색의 산과 높은 하늘, 황소들까지...
마을의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처음 한 체험은 잣 까기 체험! 가평은 잣이 특산품 이어서 주변에 오래된 잣나무가 정말 많다고 하셨다.
마트에서 파는 하얀 잣은 봤어도 솔방울 안에 들어있는 잣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옛날 방식으로 잣 까는 방법을 설명 듣고 직접 잣을 까 보았는데 망치로 계속 두드리기만 하는 것은 잘 까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두 번 두드리고 비틀었더니 잘 까지고 좋았다.
힘들게 솔방울에서 잣을 깠는데, 또 딱딱한 껍질이 나왔다. 이 딱딱한 걸 또 까내니 이번에는 갈색 껍질이 나왔다. 이 껍질마저 벗겨내야 비로소 평소 내가 먹던 잣이 나온다. 잣을 따려고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돌아가시는 분도 계신다고 하고, 이렇게 여러 번 까야 잣이 나오니 정말 키우기 어려운 농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평소에 비싸서 잘 먹지 못하니 많이 맛보자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잣을 얻기 위한 과정에 비해서는 비싸지 않다고 말씀해 주셔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체험! 손수건과 에코백 천연 염색하기.
평소에 많이 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계속 주물러야 해서 팔이 무지 아팠다. 특히 가방은 두꺼워서 더 힘들다.
그런데 색 중 보라색은 처음 보는데 색이 정말 고와서 마음에 들었다. 염색을 한 가방과 손수건이 마르니 정말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짭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박 3일의 일정을 마쳤다. 잣 향기 푸른 마을은 식사 전후에만 적절히 쉬는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알차면서도
힐링을 한 체험여행 인 것 같다. 그리고 마을 분들도 친절하셔서 더욱 좋았다. 또 농업의 중요성과 자연이 주는 먹거리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점도 좋았다.
엄마께서 대산 가족사랑 농촌체험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초등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 6학년인 나는
앞으로 신청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코로나와 장마로 우울했던 나의 6학년 생활에 활기를 넣어 준 이 체험이 마지막이라니 정말 천만 배 아쉽게 느껴졌다.
# “가족 사랑 소통 체험”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둘째 날 춤 테라피 마무리 시간에 가족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가족 간에 서로에 대해 이렇게 묻고 답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얼마 만인지... 어렸을 때는 가족이 전부여서 늘 함께하고 모든 것을 공유했는데, 학년이 올라 갈수록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고 부모님께서 걱정으로 하시는 말씀들이 잔소리로 느껴져 짜증을 내며 피했기 때문에 가족의 의미를 조금은 잊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기회로 가족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 나아가 바람이 있다면 진정한 가족 간의 소통이 필요한 시기는 청소년 시기 인 것 같으니 까칠한 사춘기 중학생 가족을 위한 “가족사랑 소통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
|
> 커뮤니티 > 우리가족 농촌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