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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과 함께하는 2013 가족사랑 농촌체험

짧지만 긴 여운, 잣 향기 배어든 가평초롱이둥지마을
글쓴이 : 송혜경 날짜 : 17.11.05 조회 : 499








2017년도에 지인을 통해 추천받은 대산재단 농촌체험. 어서 한 번 가 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생기지 않았다. 체험 예정일에 불가피한 우리 일정이 있어 아쉬울 때도 있었고, 애써 신청해 놓고 기다렸지만 탈락할 때도 있었다. 대기 2번이었다가 드디어 우리에게까지 체험기회가 왔을 때는, 가슴이 부풀어올라 뛸 만큼 기쁠 정도로 기대가 컸다.
가을 단풍 일파를 뚫고 간신히 도착한 묵안리 골짜기. 호젓한 일차선도로를 제법 달리다보니 어느새 가을 속에 성큼 들어와 있었다. 도시에서는 바쁜 일과에 퇴근하면 어둑해져 있어서 가을이 온 줄도 몰랐다. 차가 막히는 이유도 몰라서 한참 생각해 보고서야 단풍철이라는 것을 생각해냈을 정도다. 잊고 있던 가을의 색깔이 빨갛게 단풍에게로, 노랗게 은행잎에게로 물든 걸 보고서야 가슴이 저릿해졌다. 이렇게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밝게 환호하는 은행잎을 보지 못했다면 얼마나 올 겨울이 추웠을 것인가.
초롱이둥지마을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댔다. 발을 내디뎠을 때는 생전 처음 와 본 장소여서 낯선 긴장감이 살풋 감돌았다. 하지만 사무장님께서 우리가 도착할 것을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가, 반갑게 식당으로 안내해 주셨다. 김무침, 계란말이, 콩나물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반찬인데도, 손맛이 얼마나 좋으신지 젓가락질 하기가 바쁘게 맛있게 식사를 끝냈다.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한 가족소개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초등학생 자녀들을 키우는 젊은 부모들이 많아서 공감대가 있어 보여 안심이 됐다. 밥짓기와 고기굽기 당번을 정하기 위해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 '우리 집에 왜 왔니'와 '신발 던지기' 게임을 했다. 서로 손을 맞잡고 한바탕 웃고 떠들며 신나게 게임을 진행했다. 그 작고 가까운 통에 신발이 안 들어갈 때는 한편에서는 한탄이, 한편에서는 박수가 나와 신혼부부의 가사싸움처럼 다투며 친해지는 재미가 느껴졌다.
잣 까기 체험부터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되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체험에 호기심이 일었다. 선생님의 설명대로 위에서부터 나무망치로 살살 두드리니 껍질들이 벌어지면서 빼곡히 들어찬 잣알맹이들이 드러났다. 작은 잣방울 안에 백여개나 되는 잣열매가 오밀조밀 들어있었다. 청솔모만큼의 솜씨는 아니어도 한 개씩 젖히며 소중하게 잣을 수확했다. 편백나무나 삼나무에게서 나는 피톤치드향이 잣방울에서도 흘러나와, 잠시 잣을 만졌을 뿐인데 한참동안 손에서 잣향기가 감돌았다. 가을볕 아래 손에서 나는 화한 향을 킁킁거리며 냄새 맡고 앉아 있자니, 마음 속 벌레들이 모두 도망갈 듯했다.
다음은 쌀 강정 만들기였다. 쌀튀밥에 호박씨, 잣 등 견과류를 섞어 부모들이 뜨거운 조청에 버무리면 아이들이 강정 모양을 만들었다. 뚝심 있는 아홉살배기인 둘째는 역시나 자기 주먹보다 큰 공을 빚어놓았고, 세심한 열두살배기인 첫째는 작고 아담한 모양의 강정들을 여럿 만들었다. 부모들도 어렸을 때 집에서 해먹던 강정을 상기하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무를 씻어서 깍두기를 만들 차례였다. 학교 방과후학교수업에서 쉐프교실을 오래 다닌 아이들이지만 아직은 진짜 칼이 익숙하지 않아 간단하게 칼질을 해 보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익숙하게 무를 잘 썰어 모양을 내며 뿌듯해했다. 나머지는 모두 아빠 차지가 됐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밖에만 나오면 공처가 행세를 하려 한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다. 남편은 "내가 집에서도 맨날 하는데, 밖에 나와서까지 이런 걸 해야 하나."라고 반어법을 써서 나를 어처구니없게 하면서 무를 썰고, 버무렸다. 지나가던 체험선생님들도 모두 긴가민가 싶어 웃으셨다. 오랜만에 가사에서 해방된 나는 그 모습까지 흐뭇하게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깍두기를 담근 후 차를 타고 비닐하우스로 이동해 고추를 수확했다. 무농약이어서인지 벌레가 많았지만 그 벌레구멍마저도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늦가을이어서 다자란 고추는 매운 맛이 강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되도록 알이 여리고 작은 것들로만 골라 담아 고추장아찌를 담갔다. 고추장아찌 담그기가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고추에 구멍을 낸 후 통에 담아 장아찌물을 부으면 그걸로 끝. 앞으로는 시장에서 사먹기보다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직접 요리를 해 보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보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저녁 시간. 그런데 게임의 패자들이 밥을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셈인지 아이들과 아빠들은 운동장으로 뛰어가 한 몸이 되어 뛰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동으로 노소가 하나가 되어 금세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허리가 안 좋은 나는 같이 뛰지는 못하고, 운동장 앞에 놓인 가마솥에서 과연 제대로 밥이 될는지 마음 졸이며 서 있었다. 책임감에 불타는 일부 아빠들이 가마솥 앞에서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열심히 불을 살리려고 애썼다. 체험선생님들도 틈틈이 오시며 밥이 타지 않도록 불조절에 신경써 주셨다. 뜸이 다 든 후 먹어 보라며 한 입 주셨을 때는, 오랜만에 먹어보는 구수한 밥맛이 일품이어서 내심 놀랐다. 이래서 가마솥밥이 맛있구나, 생생하게 느쪄졌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유명 연예인이나 색다르고 호화로운 요리재료들은 나오지 않지만 평범한 이들이 만나 함께 나누는 구수한 한 그릇 밥과 소박한 나물 반찬이 훨씬 더 따뜻한 감동을 불러일으킴을 느꼈다.
밤에는 번아웃기법을 이용한 목공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자기가 나무에 새기고자 하는 그림의 도안을 먼저 그린 다음, 나무에 그려진 도안대로 따라그리며 나무를 태우는 기법이었다. 서랍장이 세 칸이어서 서로 한 칸씩 차지하며 아이들은 열중해서 그림을 새겨넣었다. 큰 아이는 멋진 대나무 도안을 잘 따라 새겼고, 둘째는 별처럼 살기를 바라는 평소의 바람대로 크고 작은 별이 떠 있는 우주를 만들어놓았다. 집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서랍장을 만들어서, 나무의 멋도 느끼고 보람도 얻어가는 체험이었다.
선생님들에 이끌려 부지런히 하루를 지내다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흐뭇함이 느껴졌다. 노곤한 몸을 누였다가 눈을 뜨니 상쾌한 공기가 반기는 아침이 되었다. 다들 피곤할 텐데 모두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꼴찌여서 부랴부랴 아침을 챙겨 먹고 소시지만들기 체험에 참여했다.
간 돼지고기에 양파와 부추 같은 야채와 양념을 넣고 주물러야 했다. 재미있었는지 재료를 온몸에 묻혀가며 아이들은 서로 해보겠다며 다투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소시지를 직접 만들기는 나도 처음이었다. 돼지내장 속에 주무른 돼지고기를 넣을 때는 살짝 징그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모양을 내어 소시지를 완성해놓으니 이 또한 매우 만족스러운 먹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집에 돌아가면 돼지고기를 이용해 소시지 맛이라도 내 보는 요리를 도전해봐야겠다.
마지막 일정은 '민덕기 선생님과 함께하는 숲 해설'이었다. 그 전날 선생님께서 자신을 힘 쓰는 일 담당이라고 하셔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숲해설에서 해박한 식물 지식과 경험을 보여 주셔서 깜짝 놀랐다. 두어 시간 남짓 편백나무 숲길에서 들은 민덕기선생님의 말씀은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신비하고 재미있는 것 투성이었다. 강아지풀을 둘로 나누면 떨어지지 않는 수염이 된다는 것, 키낮은 쑥이 가을이 되면 무성하게 커져서 쑥대밭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 우리나라 기후에는 편백나무보다는 삼나무가 맞다는 것, 생강나무를 잘 달여 먹으면 감기에 좋다는 것,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는 방법, 멧돼지를 피하는 방법, 멸종된 딱따구리인 크낙새 이야기, 소금보다 더 짠 북나무 등.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귀하고 생생한 이야기여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중한 자연 지식이었다. 학교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자연 체험으로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눈빛을 빛내며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평소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는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꽃인 생강나무를 생전 처음 만났다는 것이 가장 인상깊었다. 동백꽃이 생강나무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론으로만 알고 있을 뿐 어떻게 생긴지를 몰랐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뫼 산' 모양의 잎은 생강나무밖에 없다는 쉬운 설명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친정 떠나는 딸자식처럼 체험에서 만든 각종 수확물을 바리바리 싸주시는 가평초롱이둥지마을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아쉬움을 뒤로하며 떠나는 길.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더욱 깊은 정을 나눌 수 있으리라, 다른 가족들과도 웃으며 인사했다. 자연에서 살고 싶지만 결코 쉽지 않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이번 여행은 자연의 풍요로움과 가족의 소중함, 이웃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잊고 있었으나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자연과 이웃, 농촌의 따뜻함, 여유, 넉넉한 인심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가슴을 데워줄 것이다. 그들 모두를 가슴 깊이 담아두고, 내년에 다시 한번 즐거운 농촌체험의 행운이 우리 가족과 함께 하기를 벌써부터 고대한다.
김혜경 17/12/08 [03:1] 수정 삭제
다녀가신지가 꽤 되어 이제사 봅니다매번 체험객들이 다녀 가실때마다 후기 쓰셨나 ?하고 보면 없어서 안 들어 왔었는데,, 가족사랑체험 평가회에 갔더니 상을 타셔서 너무 무안했습니다.
너무도 상세하게 올려 주셔서 감사드리비니다.
사진을 보니 어떤 가족이었지. . . . . 생각도 납니다.
즐거우셨다니 . .. . . 감사드리며 아이들과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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