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농촌재단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 위치한 태인주조장. 무형문화재인 송명섭 씨(54)가 빚 는 전통술로 유명한 곳이다.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송명섭 씨는 막걸리 한 병과 사발 두 개, 그리고 굵은 소금이 담긴 앉은뱅이 상을 내왔다. 그의 술은 석 잔을 먹고 나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단맛이 전혀 없 는 그의 술은 의외로 목을 타고 쉽게 넘어갔다. 흔하게 먹는 막걸리의 톡 쏘는 맛은 없고 약간 시금한 맛이 느껴진다고 하자 송명섭 씨의 움직 임이 빨라졌다. 동글동글하게 말린 리트머스 시 험지, 요구르트, 범상치 않은 쌀. 그리고 막걸리 에 관한 자료 한 뭉치를 가져왔다.

아무런 첨가물 없이 만드는 막걸리

나에게 요구르트를 한 두 모금 먹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요구르트에 리트머스 시험지를 담근다. 막걸리에도 담 근다. 두 개의 시험지가 색깔이 비슷하다. pH4 즈음으로 나온다.

“산도가 높을수록 신맛이 강하지요. 두 가지가 비슷한데 이 요구르트는 왜 신맛이 안 날까요? 바로 단맛때문이 지요.”1리터의 술에 깨알만한 사카린 3개만 넣어도 시큼했던 술이 달착지근한 맛으로 확 바뀐다고 한다.

“시금털털하다는 말이 있지요? 그게 바로 원래 우리 술 맛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미료를 넣어 입에 달 게 만든 술을 선호하지요. 그래서 술이 달아져요. 만드는 사람 잘못만은 아니죠. 그런데 저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 이고, 음식 만드는 사람이 몸에 안 좋다는 첨가제를 굳이 넣고 싶지 않아요.”

누룩과 쌀, 물 이외에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만드는 막걸리. 그의 대답만큼이나 명쾌하고 고집스러운 맛이다.

아주 특별한 누룩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술을 긴 나무 막대로 휘젓자, 꼬륵꼬륵 꼴꼴 졸졸졸 요란한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천둥 소리까지 난다고 했다. 생균이 살아있는 소리와 함께 적당히 시금한 향이 퍼진다. “냄새 정말 좋지요? ”건강하게 익는 술에서 나는 향이 코를 찌르고 은은히 퍼지는 양조장에서 그는 유난히 더 많이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술을 많이 만드는 시기는 추수가 끝난 가을에서 겨울입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 지요? 여름에는 곡식이 없어 웬만한 집은 술을 만들 수가 없었어요.”

곡식이 비교적 풍부했던 겨울, 농한기에 술을 담갔다는 것.

오랜 채종과 연구로 술만들기 좋은 품종을 개발해냈다.

“술 만들기 좋은 온도는 보통 20~30℃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이 술만드는 환경을 보면 그 온도가 나올 수 없어요. 어릴 적에 자고 있으면 윗목에 있는 걸레가 얼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즈음에 술을 만들었지요. 보통 5~15℃ 사이에서 맛있는 술과 고급술이 나왔어요. 좋은 효모가 그때 활성화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일반화 되어있는 술 제조기술은 20~30℃에서 만드는 ‘입국(코지/koji)’을 띄워 만드는 일본의 청주제조 기술이다.

그는 11월 최아(발아하기 직전)상태의 밀을 씨눈이 다치지 않게 거칠게 빻아서 누룩균을 불러들여서 술을 만든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러운 술을 만들 수 있다. 또 4월 즈음 배꽃이 필 무 렵. 쌀이발아를해서싹이나오려고할때,‘ 쌀을뒤지면’향취 가 나는 누룩이 나오는데 이를 이화누룩이라고 했다. 이렇게 밀 과 쌀이 싹을 틔우는 시점에 맞춰서 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자연의 온도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송병섭 씨는 자신이 농사지은 쌀로 술을 빚는다		잘 익어가는 술. 꼭 살아있는 것 같다.

송명섭 씨는 아무런 첨가물을 넣지 않고 전통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다.

양조장 안에 실험기구를 갖추고 전통술에 대한 분석 연구도 열심히 한다.

술 빚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다

그는 농민이다. 1만 8천 평 논에서 1년에 250가마 를 수확한다.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쌀과 밀로 그는 술을 빚는다. 1975년부터니까 벌써 35년이 넘었다. 선친이 양조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막내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술을 접했다. 그리고 술을 만든 긴 세월동안, 그는 채종을 하여 일반 쌀보다 점도가 높아 술을 만들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해냈다. 그 품종으로 농사를 짓는다.

“일반 쌀 100그램을 1원으로 본다면 즉석밥은 100원, 고급술을 만들면 270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농사지 은 쌀로 더 부가가치를 많이 올릴 수 있겠다 싶어서 술을 만들었던 거지요.”

그가 보여준 쌀알은 일반 쌀과는 조금 달랐다. 일반 쌀보다 컸고 잘라보니 전분이 많아 보였다. 오랫동안 농사 를 지어 술을 만들다보니, 술 만들기에 적합한 쌀을 채종했고 증식했고 지금의 품종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품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을 안합니다. 저는 농민이에요. 농민이 술 빚는데 좋 은 품종을 만들었어요. 그것까지 제가 할 일이죠. 이것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지요. 그런데 관심이 없어요.”

정확하게 품질테스트를 해주고 그 결과를 공표해주면 이 쌀을 찾는 술제조업자들이 많아지고 생활도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송명섭 씨. 무형문화재인 그는 한해 수확량을 다 소모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양조장직원이 18명 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아내와 둘이 술을 만든다.

‘소맥분’이라 쓰여진 포장지를‘우리쌀’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돈조차 아쉬워 하지 못하고, 택배주문하는 사람 들한테 일일이 설명하는 걸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는 전통주산업을 육성한다면서 정작 농민에게 필요한 것들에는 무관심한 정부의 태도가 무척 서운하다고 했다.

밀과 쌀이 싹트기 직전 씨눈이 다치지 않게 거칠게 빻아서 만든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말뿐인 전통주 정책, 규제는 더 많아져

그는 지금의 전통주 정책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지금 전통주는 시아버지가 둘이에요. 농림수산 식품부로 일부 권한이 이관되면서 오히려 더 규제 가 심해졌어요. 면허는 국세청이 갖고 식품위생권 리는 농림부가 가지면서, 세금을 낮춰준다고 하는 기준이 연간 5천 리터입니다. 하루에 1만 6천 원짜 리 1박스도 안되는 양이에요. 연간 400만 원에 불 과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걸 생색내기하면서 온갖 규제로 농민들의 의지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권한을 이관하는 것보다 국세청이 그동안 연구한 자료를 공개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지금 국세법 상에서 막걸리는 여과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거친 맛이 나오지요. 음식을 만드 는 방법으로 규제를 하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에요. 음식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을 규제해야지 음식을 만드는 방법 까지 규제를 하는 것은 음식의 발전을 막는 일입니다.”

막걸리 열풍, 수혜자는 농민이 되어야

막걸리 산업의 열풍은 거세다. 대충 걸러먹는다고 이름 지어진 막걸리가 이젠 와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큰 인 기를 누리고 있다. 정부는 막걸리 세계화에 열을 올리고 있고, 대기업까지 막걸리 산업에 진출하는가하면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각 지역의 특색을 살려낸 막걸리 만들기로 경쟁 중이다.

그런데 정작 막걸리는 원료면이나 생산방법 등 전통의 옷을 입은 외국산 술이 대부분이다. 막걸리의 원료가 되 는 우리 쌀은 13%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는 쌀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 농민들에게는 별반 도 움이되지않는다.“ 지금우리나라에서생산하는술의원료를전부국산으로바꾸면우리는쌀부족국가를넘어서 쌀 기근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송명섭 씨는 말한다.

자신이 농사지은 쌀로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전통주를 만드는 농민을 위해 무엇이 시급하게 필요할까. 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진심어린 마음입니다. 정성들여 만든 술에 대해 인정을 하고 실질적으로 장려를 해 줘야지 말로만 농촌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걸 누가 믿겠어요.”
막걸리 시장은 계속 확대되고 있지만 전통술로서 막걸리산업이 농민과 상생하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전 통술 명인은 묻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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