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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그릇의 밥이 온 세상의 이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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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홍지은 |
날짜 : 15.06.15 |
조회 : 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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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안전한 밥상이란 무엇인가?
한살림과 흙살림을 이용하며 마트에서는 거의 물건을 사지 않거나 꼭 뒷면의 저농약 유기농 마크를 확인하고 사는 35세의 주부, 나. 나는 가족들의 먹거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노력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곤 한다. 8살짜리 아들은 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이 먹는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입에 달고 맛있고 색깔도 알록달록 곱고 저를 빼놓고는 친구들은 모두 다 먹는 것들을 자기도 먹고 싶은 것이다. 어쩌다 가끔 외식을 가면 콜라나 사이다를 시켜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계속 해댄다. 집에서 아무리 좋은 재료로 밥을 지으며 뭘하나 하는 생각을 부쩍 자주 하게 되었다. 어차피 밖에 나가면 안전하지 않은 음식 투성이고 비싼 값을 주고 유기농 식품을 사먹는 것이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환경과 자연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신청한 '2015 안전한 밥상 만들기' 행사에 아들, 남편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3시간 반을 걸려 인제로 내려가면서도 나의 마음은 기대감이 반, 의궁심이 반이었다.
2. 밥과 자연: 자연을 느끼면 밥의 소중함을 안다.
인제에 위치한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은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아름답고 납작한 건물들이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멀리 울산에서부터 출발한 가족부터 가까운 춘천에서 온 가족까지 7가족이 모이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간단한 가족 소개 후 로컬푸드로 이루어진 밥을 먹는다. 압력솥에 갓 해서 따끈따끈한 밥과 주변에서 채취한 것이 분명한 나물반찬들을 맛있게 먹는다. 이런 밥을 먹으면 살이 찌고 피가 되지 않을까? 다소 낯설 수 있는 반찬인데도 아이도 밥을 잘 먹는다. '2015 안전한 밥상 만들기'에서는 안전한 밥이란 우리 주변의 가까운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것을 반찬 구성부터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밥을 먹고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님의 강의를 듣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향한 곳은 뒤꼍의 텃밭이었다. 부드럽게 잘 일구어 놓은 흙을 호미로 파고 미리 준비해 주신 조 모종을 하나 하나 정성껏 심었다. 어른들은 힘들어서 나가떨어졌는데 아이들은 흙놀이를 한다 생각하는지 농사일에 열심이다. 모종을 두 판이나 심었다.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허리를 굽히고 모종을 심는게 힘들었는지 아이의 입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농부 아저씨들은 네가 먹을 밥 한 공기를 만들기 위해서 애쓰셔. 네가 심은 조로는 밥 반 그릇도 안 된단다."하고 말하자 "앞으로는 밥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겠어. 농사 너무 힘들다."하는 아들 아이. 안전한 밥상이라는 것은 자연에서 온 것을 우리가 소중히 먹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비싸게 샀지만 제 때에 먹지 않아 버렸던 음식 재료들이 떠올랐다. 결국 자연과 노동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밥상의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모종을 다 심은 아이들은 오디며 뱀딸기, 앵두를 따먹고 신나하고 있었다. 자연을 접해봐야 그 소중함을 알고 진정한 맛을 알게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밥과 부모, 아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밥이 있다.
여기 와서는 정말 삼시세끼를 가족끼리 꼬박꼬박 먹게 된다. 아이는 학원이며 학교스케줄로 바쁘고 아빠는 회사일로 워낙 바빠서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같이 못 먹을 때가 많았다. 같이 밥을 먹게 되니 재미난 점이 많다. 아빠는 아이가 어떤 반찬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왜 계란말이를 싫어하는지 쌈을 싸먹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가족끼리 그날 프로그램의 이야기도 하고 재미났던 일들도 함께 나눈다.
밤에는 갓 만든 두부와 김치, 도토리묵, 삶은 감자로 소박한 야식을 먹었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모여 앉아 먹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감자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고 어른들은 막걸리 한 잔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진다는 것은 먹을 것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밥을 나눈다는 것은 정을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른들끼리 이야기에 취할 무렵 아이들은 신발차기를 하면서 놀다가 지붕 위에 신발이 올라가는 소동을 일으켰다가 또 자기들 나름대로 해결을 하며 서로 어우러진다. 결국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기본은 밥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4. 밥과 사회 정의: 내가 먹는 밥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체험도 좋고 밥도 좋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즐거웠지만 또 하나 이 행사의 즐거움은 농촌 전문가들과의 만남이었다. 첫째날 우리에게 '밥, 식량, 위기와 극복'을 이야기해주신 정성헌 이사장님과 만남은 나의 옹졸한 '안전한 밥상'에 대한 정의를 산산히 부서주는 것이었다. 유기농산물을 사먹고 늘 원산지 표시를 꼼꼼히 보고 그렇게 해서 남편도 먹고 나도 먹고 아이도 먹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건강한 것이 제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성헌 이사장님은 그런 일반인들의 생각을 잘 꼬집어서 얘기해 주셨다. 밥에는 온 세상의 이치가 담겨있다. 자연,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밥 한 그릇에는 사회 정의의 문제가 달려있다. 우리가 먹는 유기농산물을 다소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똑같이 사먹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지 진정한 유기농 산업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파지 줍는 할머니가 길거리에 쪼그리고 먹는 밥 한 덩어리, 김치 한 조각이 내가 먹는 밥과 같다는 생각 없이 살았다. 나와 내 가족만 중요하다며 이기적으로 살았다. 밥이란 생명을 유지하는 것, 가장 중한 것. 그 소중한 밥을 어떻게 하면 모두가 똑같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쳐갔다.
5. 나가며: 식량주권과 우리의 현재와 미래
1박2일의 행사가 어느덧 마무리되고 말린 나물이니 곰취 장아찌니 챙겨주신 선물들도 감사히 잘 받았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체험이었다. 돌아가는 짐을 꾸려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머물렀던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처음 막 도착했을 때는 그저 아름답다라는 생각만 들었던 풍경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잡초를 베고 농약을 치지 않고 남보다 조금 더 많은 일을 하고 몸을 움직이면서도 그 풍경들을 가꾸어 온 여러 사람들의 땀이 이제는 보였기 때문이다.
UN에서는 비상식량으로 그 나라 사람들이 소비하는 식량의 두 달 치를 비축해 둘 것을 권고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비상식량 비축량은 그 권고에 턱없이 못 미칠뿐더러 식량 자급률도 20퍼센트 선이니 식량 자족률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제한된 자원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를 살아가려면 우리 농산물을 자급하고 소중히 사용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농부의 수고를 생각하고 자연을 소중히 대하고 그 결실로 나온 밥을 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밥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아는 것. 이런 것들이 결국 안전한 밥상을 지키는 근본적인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체험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참 크고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 것 같아 참 고마웠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을 지키고 가꾸는 모든 분들과 이 행사를 주최하고 한국 농촌에 관심을 가져준 대산재단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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