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두 딸이 유치원에 다니던 때에 남편이 우연히 대산농촌재단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저렴한 비용과 유익하고 알찬 프로그램에 매료되어 우리는 매번 응모하였고 운 좋게도 아산외암마을 농촌체험, 농도원 목장체험, 담양안전밥상 체험, 연천 푸르뫼마을 농촌체험 등을 다녀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유익했던 프로그램은 역시'나를 바꾸는 밥상'프로그램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의 생각을 바꾸고 주부로서 안전한 식탁이 가족의 건강과 더 나아가 지구 환경까지 위하는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어 큰 감동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셋째를 갖게 되고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한동안 대산농촌재단을 잊고 지냈다.
더욱이 최근 몇 년은 코로나가 심해져 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되었고, 게다가 첫째도 대입 수험생이 되어 여행을 자제해야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첫째도 대학생이 된 올 해 코로나 상황이 차차 나아지면서 우리는 다시 도전을 했고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 가족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
나를 바꾸는 밥상 -‘한국 DMZ평화생명동산’
이제는 넷이 아닌 다섯이 되어 다시 안전 밥상 체험에 갈 수 있게 되다니... 큰 딸들이 받았던 혜택을 막내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어 너무 너무 기뻤다.
2022년 8월 27일 새벽 일찍 설렘과 부푼 기대를 안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주말이고 강원도 쪽이라 나들이 가는 인파가 많은지 차가 너무 막혀서 도착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조급했는데 전화로 조심히 오시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 편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담당 대리님께서는 너무도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셨다. 이미 프로그램은 시작되어 있었다. 6가족 중 4번째로 도착한 우리 가족은 세미나 진행도중 들어가 간단히 가족소개를 하고 사무국장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인제군과 DMZ평화생명공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공원이라는 말을 듣고 도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 가꾸어진 말끔한 공원 이미지를 상상했던 나는 숙소와 교육원을 제외한 주변이 거의 자연 상태 그대로 관리되고 있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안 꾸민 듯 곳곳에 잡초가 무성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정돈된 모습이 왠지 자연과 잘 어우러져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하고 공기부터가 달랐다.
그곳은 그야말로 무공해 청정지역이었다. 공원이 축구장 13개를 합해 놓은 크기라는 말씀에 얼마나 넓은지 가늠이 안 갈 정도였다. 지도를 보니 위치가 가장 북쪽이라 북한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다.
간단한 교육 후에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푼 후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다섯 명인 우리 가족에게 숙소를 2개 배정해 주신 세심함과 식당에 가족별로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배려에 예전에 느꼈던 감동이 다시 떠올랐다.
새벽 일찍 출발하느라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 가족은 너무도 맛있게 밥을 먹었다.
고기가 없는 채식 위주의 식단인데도 우리 아이들은 정말 맛있다며 그릇을 싹싹 비웠다.
평소 인스턴트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던 아이들이었는데 반찬 투정하지 않는 모습에 엄마로써 무척 흐뭇했다. 조미료 없이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린 그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건강식이었다.
<첫째 날 일정>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첫 일정으로 농업회사법인 ㈜미실란 대표이신 이동현 박사님의 먹거리 세미나를 들었다.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던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 더 무섭고 걱정이 되었다. 축산업이 환경에 안 좋다는 말은 언론매체를 통해 가끔 들었지만 축산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그렇게 심각한 줄은 처음 알게 되었다. 식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정성을 덜 들인 듯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앞으로는 오히려 나물과 야채 위주의 채식 식단을 자주 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특히 탄소 배출이 가장 심한 소고기를 조금 적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세미나 내용 중 발아 현미에 대해 설명해 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기를 잉태한 엄마가 모든 좋은 영양을 아기에게 주듯이 발아된 싹 안에 모든 좋은 영양 성분이 가득하다는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발아 현미를 구입했고 매 끼니마다 잘 섞어 먹고 있다.
역시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다.
친환경 농업이 지구환경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안심이 되었고 나부터 생각을 바꿔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먹거리를 자주 구입해 먹겠노라 다짐을 했다. 또한 귀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시는 농부님들의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이 강의를 간편식과 인스턴트에 익숙해져 있던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딸들과 함께 들어서 더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딸들이 엄마가 주는 나물과 야채를 전보다 조금은 더 잘 먹는 것 같아 보람 있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동안 초등학생인 막내는 재미있는 자연놀이와 청귤청 만들기를 하였는데 집으로 와서 음료로 맛있게 타먹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농민이 들려주는 농사 이야기와 생명살림 오행동산 견학이었다.
우리는 넓고 넓은 오행동산에 올라가 선생님의 설명과 지도를 받으며 깨순을 따고 옥수수를 땄다. 그렇게 넓은 깨 밭은 처음 보았다. 열매가 잘 열릴 수 있도록 깨순을 따줘야 한다는 말씀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땄다. 도시에서는 비싸고 귀한 무농약 유기농 농산물이기에 귀한 보물을 담듯 꾹꾹 눌러 담았다. 옥수수와 수박은 저녁 간식으로 다 함께 먹는다고 하니 아이들도 신나 보였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간식으로 먹는 이 귀한 체험을 또 언제 해 볼 수 있을까.
드디어 오늘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고추장 만들기 시간이 되었다.
식당에 가니 가족별로 테이블에 항아리와 메주가루, 고춧가루, 소금이 준비되어 있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덕분에 지금까지 한 번도 된장, 고추장, 김치 같은 음식을 만들어 본적 없던 나는 고추장을 만든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옆 마을에서 달려오신 전통요리 전문가 선생님께서 우리가 우리 농산물로 만든 발효 음식을 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를 먼저 해 주셨다. 우리 딸들의 장 건강을 위해 발효 음식을 더 열심히 먹이리라 또 한 번 다짐했다.
재료상의 문제가 조금 생겨서 직접 그 자리에서는 담그지 못했다. 몇일 뒤 집으로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재료를 가지고 아이들과 손쉽게 고추장을 만들었다. 뭐 이정도면 나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먹으면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도 거실 베란다 한쪽에 놓여 햇빛을 받으며 맛있게 익어가고 있는 항아리 속 고추장을 생각하면 뿌듯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저녁식사를 오삼불고기로 아주 푸짐하게 먹은 뒤 몸과 마음을 새롭고 건강하게 해주는 고구려 북소리 문화체험시간이 되었다.
개성과 카리스마 최고이신 강사님의 지도를 받으며 다 같이 북을 쳤다. 심장이 터질듯 한 웅장한 북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북소리체험이 끝나고 허기가 진 가족들을 위해 낮에 다함께 수확해온 옥수수와 수박으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주셨다. 거기에 강원도 감자와 오미자차까지 정말 최고의 조합이었다.
그날만큼은 다이어트 걱정은 내려놓고 아이들과 쉴 새 없이 먹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우리가족은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을 산책하며 별을 보러갔다.
그 날 아이들과 함께 본 아름다운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우니 은하수와 별들이 더 잘 보였다. 은하수를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던 큰딸은 연신 카메라로 그 아름다움을 담기 바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둘째 날 일정>
둘째 날 새벽 일찍 남편과 둘이 나와 DMZ평화동산 주변을 둘러보며 아침 산책을 했다. 오붓한 둘만의 시간이 참 좋았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맛난 아침 밥 먹은 후 짐을 챙겨 그날의 일정을 위해 인제 하추리 도리깨 마을로 향했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차로 50분정도 걸려 도착한 도리깨 마을은 깊은 산골짜기 사이에 자리 잡은 말 그대로 산촌이었다. 조용하지만 생기가 넘쳐 보이면서 정감 가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 사업을 운영하시는 예쁜 사무장님의 마을 소개가 끝난 후 두부 만들기 체험을 했다.
불린 콩을 맷돌로 직접 갈아보고 면보에 넣어 주물주물 짜낸 콩물을 끓인 후 간수를 넣는다. 몽글 몽글 덩어리가 생긴 콩물을 틀에 넣고 누르면 따끈따끈 맛있는 두부가 완성된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드시는 모습을 많이 봤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이 역시 처음이라 내 자신이 아이처럼 더 즐거웠다. 장작불로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짓는 건 어릴 적 많이 해 본거라 자신 있었다. 가마솥과 아궁이가 너무 작아 앙증맞았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직접 지은 가마솥 밥에 우리가 만든 두부, 맛있는 제육볶음 한 상으로 마지막 식사까지 맛있게 먹었다.
아련한 어린 시절의 옛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마무리>
이로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소감 발표와 설문지 작성을 마치고 참석한 가족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작별 인사를 했다. 친정 엄마가 챙겨 주시는 것처럼 푸짐한 농산물까지 덤으로 한 가득 챙겨주셨다.
역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대산은 나에게 시골의 정이자 감동이고 힐링이었다. 가슴이 참 따뜻해졌다.
길지 않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에도 예전처럼 나와 우리 가족에게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대산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은 나는 대산농촌재단을 주변 지인들에게 널리널리 홍보하는 홍보대사가 되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대산을 많이 알리자는 목표와 사명감까지 생겼다.
요즘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진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이 무겁다. 쌀농사를 짓는 농부님들은 얼마나 속상하실까. 식생활의 변화로 쌀 수요가 줄어드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이해하지만 대책은 없는 걸까. 나도 고민이 깊어진다.
이번 여행을 다녀온 후 빵이나 국수 등 밀가루를 좋아하는 나도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할 때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그래도 기왕이면 쌀밥을 먹자! 우리 농산물을 먹자!
나의 행동이 바뀌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더 나아가 우리 곁의 농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 더불어 지구 건강도 살릴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을 다시 한 번 나에게 상기시켜 준‘나를 바꾸는 안전 밥상’
역시 작은 교육의 힘은 크다.
마지막으로 농촌이 우리 삶의 뿌리이고 우리 생명을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아낌없이 투자해주시는 대산농촌재단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교육을 진행해 주신 DMZ 사무국장님, 대리님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