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5년 전쯤 지인을 통해서 대산 농촌 재단이란 곳을 알게 되었고, 그 해 운 좋게 친정 어머니 모시고 담양 교육원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그림 같은 한옥에서의 숙박과 정성 가득한 밥상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곳 사람들에게 완전 반해버렸어요. 무엇보다도 입맛 까다로운 엄마는 그 곳에서의 매 끼니 밥상에 최고의 점수를 주셨어요. 해외여행을 함께 모셔가는 것 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 했었다 고하셨지요.
그런 어머니는 3년 전 가을 폐암4기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으셨고, 얼마 전까지 씩씩하게 잘 버티며 치료를 해 오셨어요. 그런데 최근에 잘 듣던 약에 내성이 생겼고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어서 신약 임상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입맛이 까다로운 어머니셨는데 항암 치료를 받다 보니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최근 한두 달 사이 부쩍 입맛이 없으셨고 잘 못 드시니 체중은 계속 줄어들었고, 함께하는 가족들의 고민은 깊어만 갔습니다.
어떻게든 엄마 식사를 하게 하려고 맛집이란 맛집은 다 찾아 다녀봤지만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10월에 대산농촌재단에서 ‘나를 바꾸는 밥상‘ 이라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진행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올해부터 일상회복과 더불어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뻤습니다. 혹시라도 5년 전 담양 ’전남친환경농업교육원‘에 방문을 하면, 그 좋았던 기억과 자연의 풍미를 살린 밥상,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의 기운과 더불어 엄마가 밥 한술이라도 들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대산 농촌재단에서 저희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기회를 주신 것인지 추가로 선정되어 하늘이 파란 10월의 어느 가을 날 주말, 우리 가족은 담양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담양까지는 4시간 정도 걸렸고, 그때 엄마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출발 전날 밤까지도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저는 왠지 그 곳에 가면 엄마가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우리 가족은 무리한 일정 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일단 새벽 6시에 출발했습니다. 엄마의 몸 상태가 차를 오래 타는 게 다소 무리였지만, 엄마는 이를 잘 견뎌 주셨습니다. 함께 했던 10살 아들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인데, 잘 참고 가서 다행이었고요, 저와 번갈아 운전을 하던 남편도 장거리 운전을 투덜대지 않고, 즐거운 가을 여행을 만끽하는 자세로 임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어렵게 4시간 만에 원하던 그 곳 담양두리농원에 도착했고, 알고 보니 그 날 참가자 중에서는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족이었더라고요.
완연한 가을햇살로 가득한 두리농원은 도착과 동시에 우리 가족에게, 사실 참가자 모두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듯하였습니다. 엄마도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우리는 참가자 등록을 하고, 점심 식사하러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5년 전 정성 가득한 식단 그대로 정갈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어요. 엄마는 이것 저것 조금씩 음식을 뜨셨고, 식탁에 앉으셔서 첫술을 뜨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저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엄마를 빤히 바라보니 엄마는 “먹을 만 해“ 라고 하시면서 ”너도 어서 먹어“라고 하셨어요.
저는 밥상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요. 최근 밥상 앞에서 엄마는 항상 “안 넘어가”“못 먹겠어”를 달고 사셨어요.
“먹을 만 해”라는 답은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대답이었어요. 며칠 만에 제대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져왔습니다. 밥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대산 농촌 재단이 환자 한 명 살렸다 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식사를 다하시고는 밥을 먹으니 눈도 떠지고 허리도 펴지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정말 먼 길 달려온 보람이 느껴진 그런 날이었습니다.
환자 가족이 아니라면 이런 마음 잘 모르실꺼에요. 담양 다녀와서 또 다른 항암을 앞두고 있어서 어떻게든 잘 먹여야하는데 밥 한술 먹이는 게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어머니는 점심식사 하시고 다른 가족들 교육 받는 동안 숙소에서 좀 쉬셨고 저와 남편은 박진희 선생님의 멋진 강의를 들었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기후와 음식, 미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사실 남편도 기후변화와 관련한 책을 쓸 정도로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예전에 강사님이 속했던 NGO단체에서 같이 활동했던 경험도 있고, 함께 하던 주변 지인들도 많아서 서로 안부와 소식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밥상 말고도 이 프로그램이 우리 가족들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어진 강의에서 유기농 농사의 꼭 필요성에서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농부가 안전 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농부가 농사짓고 안전한 농산물을 모든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사는 내가 체감하는 기후 위기와 농촌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이 느끼는 기후 위기의 체감 온도는 매우 다르구나를 느끼며 ‘작은 실천이라도 하나하나 해 나가야겠다‘ 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장아찌 만들기 하면서 원장님이 설명해주신 간장, 매실, 당근의 민낯들은 사실 5년 전에도 들었는데, 그때 당시 잠시 실천하다 그간의 일상에서 편암함과 타협한 모습을 되돌아봤습니다. 사실 워킹맘으로 아이를 챙기고, 가족의 식단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았는데, 주기적인 교육으로 건강한 밥상에 대한 정신적 재무장과 실천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담양 다녀온 다음 주말에 ㅎㅅㄹ가서 백미, 현미, 오분, 칠분도미 쌀과 산골간장을 구매하고 있는 나를 보며, 교육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1박2일 동안 밥을 못 드시던 환자인 엄마는 4끼를 꼬박꼬박 드셨고, “밥맛이 괜찮네. 맛있다.”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어요. 매 끼니 식사를 하시더니 기운도 차리셨고, 많이 걷는 것 도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는 죽녹원, 관방제림 산책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하셨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쓴 글을 쭉 읽어보니, 엄마 이야기만 너무 많이 적었구나 싶습니다. 그 만큼 절박했다는 뜻이었고, 이 번 프로그램에 함께 할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준 대산농촌재단과 전남친환경교육원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그랬습니다.
사실 함께 교육을 받고, 밥상을 함께 했던 아버지와 남편, 10살 아들도 너무나 만족했던 교육이며 여행이었습니다. 아이는 주말 내내 파아란 하늘 아래 푸른 잔디의 두리 농원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주말을 보냈습니다. 멀미로 장거리 여행을 정말 싫어하는 아이이지만, 다음에도 담양 두리 농원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따라 나서겠다고 하는게 귀여웠습니다. 환경문제에 평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남편도 강의도 열심히 듣고, 밥도 잘 먹더라고요. 틈틈이 영산강 제방 산책도 하고,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둘러보기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더라고요. 부지런한 우리 아버지는 새벽부터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또 맛있게 식사하시고, 입맛이 살아난 아내를 보며 허허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식구들과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냥 좋았습니다.
이 자리를 비롯해서 이런 멋진 프로그램으로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대산 농촌 재단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따뜻하게 맞이하고, 배려해주신 두리농원 가족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립니다.
항상 대한민국 농촌이 잘 될 수 있게 많은 관심 갖고, 소비자로서 나와 농촌을 살리는 상생을 실천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