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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리 마을로 떠난 제2의 신혼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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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진희 |
날짜 : 12.10.24 |
조회 : 3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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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리 마을로 떠난 제2의 신혼여행
올해로 결혼 16년.
반짝이는 이벤트로 결혼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신혼 때와는 다르게 서서히 그 날짜도 가물거리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올해는 아침에 달력을 보고서 겨우 오늘이 바로 결혼기념일임을 알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한 달 전부터 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대고 별표까지 해대며 수선을 떨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결혼 당사자인 우리는 아침에 ‘가만, 이게 무슨 표시지?’하는 남편의 말 한마디 덕분에 저녁에 외식이라도 하게 된 셈이다.
저녁에 식당에서 덤덤히 식사를 하면서 사실 난 속으로 무척이나 서운해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살줄 누가 알았겠어. 사는 게 뭐 그리 바쁘다고 결혼기념일도 제대로 못 챙긴단 말이야? 그리고 뭐 밥 먹을 일이 그래 없나? 결혼기념일에 고작 밥이나 먹다니... ’
잊어버리긴 마찬가지면서 내심 나는 남편의 기억력이 서운했고 더불어 갑자기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까지 파도치듯 몰려들고 있었다. 그날은 그렇게 씁쓸하고 서운하게 지났다.
다음 날 아침 6시.
“얘들아, 일어나라. 짐 챙기고 우리 떠나자!”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4학년 아들 녀석이 귀가 번쩍이는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빠, 뭐라고? 진짜 어디가?”
“ 그렇다니까.. 어제 엄마 아빠 결혼한 날 인거 알지? 오늘은 신혼여행 가야지!”
그렇다. 남편은 한 달 전부터 결혼기념일을 위해 이벤트를 구상하다가 전에 딱 한번 운 좋게 하게 된 대산 농촌가족체험이 생각나 혹시나 하고 응모해 보았던 것이다. 마침 결혼기념일 다음날이고 우리가 사는 울산과 비교적 가까운 남해에서 한다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응모를 했는데 그게 떡하니 당첨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감쪽같이 우리 모두를 속이고 전날 그렇게 무덤덤하게 연기를 했던 남편을 생각하니 전날 한 오만가지 원망과 설움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 줏대 없는 여자라고 해도 좋았다. 난 멋진 남편과 사는 행복한 여자였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남해로 가는 길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들뜬 마음으로 해바리 마을을 찾았다. 마을 어귀의 커다란 팽나무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260년이나 된 아주 귀한 나무가 이 마을의 든든한 수호신같이 여겨졌다. 우리 말고 여러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마을을 둘러보고 있을 때 먼저 점심식사를 하시라며 가족들 이름을 차례대로 불러서 회관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옆에는 어여쁜 딸아이를 둔 가족이 앉았는데 4학년 아들 녀석이 괜히 부끄럼을 탔다. 운영위원장님께서 옆자리에 앉은 분들이 체험하는 내내 짝지가 될 가족이라며 인사를 시키셨다. 전에 체험 할 때는 우리가족만 오붓하니 좋았는데 갑자기 어색해졌다. 위원장님 말씀이 일부러 다른 가족들과 정을 나누는 것도 뜻이 있다고 그렇게 묶어(?) 놓으셨단다. 식사 후 아들 녀석이 일정표에서 딱 찍어 논 갯벌체험을 나섰다. 바지락이랑 게 잡을 생각에 흥분한 아들은 정말 바지며 옷을 신경 쓰지 않고 열심이었다. 사춘기라고 새침하던 딸도 내 옆에서 움직이는 게를 손으로 잡으며 신기해 한다. 나면서 내내 도시생활을 했던 나는 검은 뻘 속에 바지락이 정말 존재 할까 의심하며 조심조심 호미질을 했다. 결국 남편과 아들은 살아 움직이는 게만 한 가득 담아오고 나와 딸은 바지락보다 작은 자갈을 더 많이 수확했다. 이걸로 바지락 칼국수를 끓여 주신다던데 어림도 없겠다. 그런데 잡아 온 바지락과 고둥들을 위원장님이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신다.
“ 이 작은 바지락 녀석이 물을 얼마나 정화시키는지 아십니까?”
바지락이 정화를 시킨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냥 뻘에서 사는 생물인줄 만 알았다. 그런데 2리터나 되는 물을 정화시킨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잡아온 바지락을 바닷물에 담아왔는데 거의 흙탕물 이였다. 그런데 우리가 경운기를 타고 마을 트레킹을 하고 참다래 따기 체험을 하고 돌아와 보니 정말 물이 맑아져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환호성과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나와 남편도 작은 돌기 같은 것으로 살짝 움직이는 바지락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이렇게 작은 존재들도 자신의 터전을 보존할 줄 아는구나 싶었다. ‘숨 쉬는 갯벌’이라고 보존하자는 소리를 TV매체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나에게 갯벌은 그저 머드 정도의 이미지 뿐 이였다. 장화를 신고 돌아다니면서도 조심성 없이 헤집고 다닌게 참으로 미안하기까지 했다. 아이들도 뻘에 종류가 세 가지나 있다며 의아해 하더니 일기장에 적어 놓는다. 모래갯벌, 진흙갯벌, 혼합갯벌...
저녁을 먹기 전에 남해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며 편백나무 숲에도 갔다. 좀 가파른 길을 투덜거리며 올라간 아이들이 오히려 신나서 편백나무 사이사이를 뛰어 다닌다. 편백나무 숲에 있으면 자연치유적으로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아토피 피부도 진정이 된다는 해설사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우리도 일부러 몇 바퀴 돌고 왔다.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일까 올라 올 때 보다 아이들 얼굴도 사람들 얼굴도 참으로 편하고 넉넉해 보였다.
저녁은 민박집 아주머니 집에서 먹게 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머문 민박집은 ‘몽돌집’이였다. 정둘자 할머니는 남자 손주뿐이라며 딸아이들을 보면서 좋아해 주셨다.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이런 체험들 때문에 하나도 외롭지 않으시다며 오히려 즐거워 하셨다. 위원장님께서 마을에서 엄선된 집만 민박을 허가해 주신다더니 엄선된 기준이 음식 솜씨와 미모였나 보다고 우리가 감탄을 하자 손사래를 치시면서 부끄러워하신다.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다정하신지 아이들은 마치 제 외가인 냥 마당에서 뛰놀고 아주 갑자기 두 집이 화기애해 졌다.
아이들이 배고프겠다며 서둘러 저녁을 챙겨주신 덕분에 우리 가족은 노을이 지고 있는 마을을 찬찬히 둘러 볼 여유도 챙기게 되었다. 남해는 마늘이 유명하다더니 밭에는 마늘 농사를 위해 물을 뿌리는 작업과 벼 같은 낯선 곡물을 널어놓았다. 이게 뭘까? 궁금해 하며 기웃거릴 때 경운기를 타신 할아버지가 거두려고 오셨다. 끝이 붉고 무성한데 수수처럼 생겼지만 키가 좀 작았다. 아이들하고 하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아가, 이건 조라..”하셨다.
“조...라구요?”내가 되묻자, “ 밥에 넣어 먹는 노란 조! 처음 보나?”하시며 살짝 웃으신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조금 털어보여 주신다. 붉은 겉피에서 병아리처럼 노오란 조 알갱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우리는 처음 본 것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마을 할아버지는 손주 생각이 나시는지 한참을 그렇게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대답해 주셨다. 어쩌면 마을 이방인이 귀찮으시기도 할 터인데 멀리서 온 손주들 보듯 다정하게 말을 받아주시는 모습에 참으로 감사했다. 마을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어둡고 맑았다. 그 어둔 밤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들을 보며 우린 소원등도 날렸다. 이런저런 인간의 욕심과 바람을 적은 등들이 하늘의 별까지 가려는 듯 비상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 속에 꼭 담아 놓고 싶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민박집 짝지 아이들과 아들아이가 벌써 한 가족처럼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런 저런 경계들로 사람사귀기 쉽지 않은 우리 어른들에게 순수한 사귐에 대하여 깨달음을 주는 것 만 같다. 다음 날 울산으로 돌아올 때 양손 가득 안겨준 해바리 마을의 선물보따리가 받기 죄송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많은 추억과 교훈들로 성숙한 마음이 가을 수확의 기쁨처럼 풍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신혼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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