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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만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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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기춘 |
날짜 : 14.11.30 |
조회 : 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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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주말 날씨가 춥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그리 반갑지 않았다. 빗길에 차가 막혀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도 출발시간 바로 직전에 서야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안내를 담당하신 김미연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이 행사가 가족들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내가 이 번 ‘2014 안전한 밥상 만들기’ 행사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두 달 훨씬 이전부터였지만 실제 행사에 참여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참가신청 후에 참가자로 선정이 되어야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 5명의 동의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참가 신청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서로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여행이 아니라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것에 대해서 가족들의 반대가 아주 심했다.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별로 내켜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아빠는 뭐든지 아빠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많이 삐쳐 있었다. 아내는 ‘할 일도 많은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 인제 자작나무숲은 10월에 갔다 왔지 않느냐’고 하면서 불만을 내비쳤다. 어머니는 시골에 간다고 하니까 같이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내가 몸도 안 좋은데 어떻게 따라 가겠느냐? 그냥 너희들이나 다녀와라’고 하시면서 계속 안 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10차 교육으로 올해의 안전한 밥상 만들기 교육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서 며칠 간 고민한 끝에 참가 신청 마지막 날인 11월 11일 마감 시간 바로 5분 전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날 저녁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을 했다. “아빠가 오늘 ‘안전한 밥상 만들기’교육 신청을 했는데, 경쟁률이 높지 않아서 당첨될 가능성이 높다. 당첨되면 할머니 포함해서 우리 가족 5명 모두 다 같이 간다.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재미있는 가족 여행이라고 생각하자. 아빠가 교육 내용을 살펴보니 한 번 꼭 다녀올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실망스러운 여행이 된다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아빠 의견대로 결정하지 않겠다. 그러니 이번에는 아빠 뜻을 따라주기 바란다.” 나는 그렇게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참가신청을 하였고, 결국 참가자로 선정이 되었다.
2. DMZ평화생명동산
버스로 3시간 만에 도착한 DMZ평화생명동산은 참 특이한 곳이었다. 홈페이지의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멋있었고, 무엇보다 건물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집이었다. 우리 가족이 묵은 방의 이름은 ‘돌마자’이었는데, 돌마자는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이다. 이곳에서는 방 이름을 우리나라 토종 민물고기 이름을 따서 지었다. 외풍은 좀 있었지만 난방은 따뜻하게 잘 되었고, TV가 없어서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DMZ평화생명동산에 도착하고 나서 곧바로 각자 숙소에 짐을 풀고 회의실로 모여서 1박2일 일정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그 후에 유기농 나물이 주된 반찬인 점심식사를 하고서 다시 회의실에 모여서 황호섭 사무국장님으로부터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농사체험으로 ‘돼지감자’ 캐기를 했다. 예전에 돼지감자는 별 쓸모가 없는 작물로 여겨져서 뚱딴지라고 불리면서 천대를 받았는데 지금은 ‘이눌린’(천연인슐린) 성분이 많아서 당뇨와 췌장 기능 개선, 다이어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특용작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캘 줄을 몰라서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것들만 캤는데, 계신일 부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깊이 파니까 주먹만 한 돼지감자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아들 녀석과 딸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열심히 돼지감자를 캤고, 아내도 나와 함께 부지런히 돼지감자를 캤다. 딸아이는 자기가 캔 커다란 돼지감자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도 개의치 않고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돼지감자를 캐니까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저절로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농사체험이구나 싶었다.
3. 만사지식일완
원래 일정에는 명사특강 후에 돼지감가 캐기가 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서 돼지감자 캐기 이후에 명사특강이 있었다. 어른들은 명사특강을 듣고, 아이들은 에너지 만들기 체험을 했다. 아이들은 자전거 페달을 돌려서 얻은 에너지로 믹서를 돌려서 토마토주스를 만들어먹었다고 한다. ‘밥,생명,식량의 위기와 극복’이라는 주제로 명사 특강을 해주신 분은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님이셨다. 조금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분으로 단박에 기세가 엄청 강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 이사장님이 강의하신 핵심은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 이 한 글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만사지식일완-“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다.” 동학 2대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밥은 식량이고 농업이며,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세상일의 으뜸이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23% 밖에 되지 않으며 지금부터 식량자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큰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왜 안전한 밥상 만들기가 중요한지에 대해서 1시간 반 동안에 열강을 하셨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인 11월 29일 KBS 추적60분에서 한우 집단 폐사에 대한 보도를 하였다.
볏짚을 먹은 한우가 집단 폐사를 한 사건을 다루고 있었는데, 벼멸구 방제를 위해 사용한 농약이 잔류된 볏짚으로 인해 소가 농약중독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고의로 사건을 은폐 축소한 정황이 있었다. 볏짚에서 농약이 검출되었다면 알갱이-즉 쌀에서도 농약이 검출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서 이를 덮는 쪽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우리가 늘 먹는 쌀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뼈아픈 현실이라고 하겠다.
4. 오행순환의 집
저녁식사 후에 유옥선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낮에 캔 돼지감자를 재료로 장아찌를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오행순환의 집 체험을 했다. 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 체험을 하는 곳인데, 우리는 시간 관계상 5가지 체험을 다 하지는 않고 봄,여름,가을 체험만 했다. 나는 그 중에 봄 체험실이 가장 편안했고 마음에 들었다. 1박2일 일정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체험이 바로 이곳 오행순환의 집 체험이었는데, 오행순환의 집은 일반 찜질방과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편백나무와 황토가 주는 아늑함과 원적외선이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5. 자작나무숲
아침에 지성철 부장님이 가르쳐주신 기체조를 따라하면서 자작나무숲을 산책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했다. 기체조 후에 아침식사를 하고서 곧바로 버스를 타고 자작나무숲을 향해 출발하였다. DMZ평화생명동산에서 원대리 자작나무숲까지는 버스로 약 35~40분이 소요되었다. 우리 가족은 지난 10월 26일에 자작나무숲에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 어머니는 함께 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70대 후반의 연세에다가 무릎도 좋지 않아서 겨우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걸을 수 있을 뿐이어서 산에 간다는 것은 정말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자작나무숲은 코스가 그리 험하지는 않고 평탄하지만 빨리 걸어도 2시간, 보통 3시간이 걸리는 코스여서 나는 어머니가 같이 숲 탐방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숙소에 계시는 것보다 산 구경이라도 하시는 것이 나을 듯하여 자작나무숲 입구까지는 같이 가보시자고 권하였는데, 뜻밖에도 같이 숲에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김미연 선생님께서 어머니에게 힘드시더라도 천천히 같이 가보시자고 한 말에 어머니가 힘을 내신 것이었다. 나도 ‘힘드시면 도중에 내려가셔도 되니 일단 한 번 같이 가시자’고 말하였지만 탈이라도 날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는 당신 일생에 한 번 뿐이라는 심정으로 진통제를 드시고 자작나무숲 탐방 코스를 꿋꿋하게 완주하셨다. (그 때 어머니 옆에서 도움을 주셨던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자작나무숲 탐방에서 임기혁 자연환경해설사님께서 강조한 말씀이었다.
임기혁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걸으니 1달 전에 자작나무숲에 왔을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산에 많이 다녔지만 우리 산의 나무와 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기에 그냥 산에 오르기만 했을 뿐 주위에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나무뿌리 밑의 말벌집과 겨울잠 때를 놓친 뱀을 보았고, 갈참나무,졸참나무,때죽나무,싸리나무 등의 유래와 생김새에 대해 배웠으며, 허브의 참뜻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허브라고 하면 흔히 서양의 약용식물을 생각하는데, 허브(Herb)는 ‘식용,약용,향기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모든 식물’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식물이 거의 다 허브인 것이다.
8. 마무리
1박2일의 행사가 끝난 후에 마무리를 하면서 각자 한 마디씩 소감을 발표하였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 정반대로 딸아이는 다른 가족여행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고 했고, 아들은 정말 뜻 깊고 배울 것이 많은 모임이었다고 말했다. 아내도 프로그램 내용에 아주 만족해했고 네 끼의 맛있고 안전한 먹거리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 즐거워하는 일이 없던 어머니가 아주 즐거워하셨다. 어머니가 원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시기도 하지만 순백의 자작나무숲을 다녀오신 경험이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나도 아주 즐거운 1박2일이 되었고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한 밥상 만들기’라는 재미있는 가족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나는 내년에도 이러한 행사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신청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주위의 분들에게도 이 행사에 대해 알려주려고 한다. 각자의 ‘안전한 밥상’을 위하여 꼭 신청하라고 말하겠다. 지구의 건강, 사회의 건강, 나의 건강은 결국은 모두 하나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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